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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만족 맛의 메커니즘 찾아라
블라인드 | 등록일 : 2007-12-21 16:19:25 | 조회 : 11269
우리의 혀는 맛을 느낀다. 혀의 미뢰(미각수용체가 들어있는 맛을 느끼게 하는 부분)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일본어로 '우마미'라고 부르는 감칠맛 등을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면서 우리는 맛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혀에서 전달되는 5가지 맛 이외에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바로 '풍미(風味ㆍflavor)'다. 과학자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 이 같은 풍미의 비밀을 발굴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감동적인 맛을 선사하기 위한 풍미과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오감을 만족시켜라

과거 맛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요리나 식료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시식하게 한 후 어떤 것이 가장 맛있는지를 묻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감자의 맛과 감자 칩의 맛이 다르듯 우리가 알고 있는 식품의 맛은 실제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좀 더 진짜 같은 맛을 요구한다. 또한 평범한 쇠고기 맛 보다는 한우 쇠고기 맛처럼 새로운 맛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맛있으면서도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즉 먹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하는 음식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식품과학자들은 대중들의 오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혼합물을 개발하기위해 무수히 많은 물질들을 분석ㆍ배합ㆍ분리하고 있다.

풍미과학의 선두주자인 미국 인터내셔널 플레이버 앤 플래그랜스(IFF)사는 풍미의 비밀을 풀기 위해 '셉박스(Sepbox)'라고 불리는 기계를 사용한다.

여기에 커피, 오렌지 등을 넣으면 그 안에 들어있는 화학적 혼합물들을 수 백 가지로 분리해준다. 이처럼 어떤 혼합물이 어떤 맛을 내는지를 정확히 파악, 대중이 원하는 맛을 찾아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 풍미 구현의 핵심은 냄새

풍미는 혀가 느끼는 맛과는 다르다. 미각과 함께 시각과 후각, 기분이나 감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기관을 만족시켜야만 구현 가능한 맛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풍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냄새, 즉 후각을 꼽는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을 느낄 수 없듯이 냄새 분자의 자극 없이 인간은 결코 풍미를 느낄 수 없는 탓이다.

일례로 딸기 하나에 들어있는 냄새 분자는 에스테르, 테르펜, 락톤 등 총 250가지에 이른다. 250여개의 물질이 하나로 합쳐져 딸기의 맛과 냄새를 형성하는 것. 반면 딸기를 먹을 때 혀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당분의 단맛과 과일산의 신맛뿐이다.

과학자들이 인체의 후각시스템을 정확히 밝혀내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코 안에 있는 냄새 수용체는 수 십 여종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노력과 DNA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냄새 수용체가 무려 250~450가지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최대 450가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액셀 박사는 "수용체의 숫자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냄새를 놓고도 조금씩 다르게 느낄 수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각각의 수용체가 어떤 냄새에 어떻게 반응하고, 이것이 음식의 풍미를 완성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성별ㆍ인종별 유전적 특성까지 연구

일단 풍미 구현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은 혀와 코다. 하지만 이들이 행하는 일련의 물리화학적 과정은 사실 배관을 통해 신호를 흡수하는 일에 불과하다. 이들이 보낸 신호의 결과는 결국 전두엽, 편도, 해마, 시상하부와 같은 뇌 부위에서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단계에서 맛이나 향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 기억이나 무의식적 판단들이 개입하기도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단순히 좋은 맛과 좋은 향기만으로는 사람들이 원하는 풍미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모넬 화학감각센터의 게리 뷰챔프 박사는 "진정한 풍미를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맛과 냄새의 인지과정은 물론 의학, 해부학, 물리학, 신경학, 생물학 등의 학문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여기에 개인별 건강상태나 인구통계학적 특징, 그리고 성별?인종별 유전자 특성까지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조만간 개인의 환경적, 감정적 요인까지 아울러 인간이 맛을 인식하는 모든 메커니즘을 밝혀낼 것이다. 이때에는 남의 집 음식보다 우리 집 음식이 맛있는 이유, 공장 김치보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가 더 맛있는 이유 등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IFF의 마크 드위스 박사는 "풍미의 신비를 풀어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득은 식품 생산업자들과 요리사들이 개개인의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는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점"이라며 "이는 모든 이들이 감동받을 수 있는 맞춤형 식품의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혀 특정부위 상관없이 다섯가지 맛 모두 느껴

■ 혀의 맛 인식 메커니즘

인간의 혀는 단맛ㆍ짠맛ㆍ신맛ㆍ쓴맛ㆍ그리고 감칠맛 등 5가지 맛에 반응한다.(매운맛은 혀가 느끼는 통증이다.)

많은 사람들이 혀의 특정 부위에서 특정한 맛이 감지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각 수용체를 갖고 있는 혀의 미뢰는 부위에 상관없이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미뢰는 혀에 무수히 달려있는 유두돌기(papillae)에 존재하는데, 유두돌기의 모양에 따라 미뢰의 분포와 밀도가 다르다. 사람의 혀 모양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미뢰의 숫자와 분포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맛의 달인들이 가진 미뢰는 보통사람보다 훨씬 민감하다. 이들에게 케일이나 순무 같은 음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쓰다.

냄새분자→후각뉴런→ 뇌 후구 순식간에 전달

■코의 냄새 인식 메커니즘

인간이 냄새를 맡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구체적으로 특정 물질(음식)이 공기 중에 냄새 분자(B)를 퍼뜨리면 호흡과정에서 비강(A) 속으로 들어가 후각상피(E)의 후각뉴런(D)에 연결된 냄새 수용체(C)에 달라붙는다.

이렇게 후각뉴런이 활성화되면 후각을 담당하는 뇌의 후구(G)에 전기신호를 보내 이 냄새를 인식했음을 알린다. 이때 각각의 수용체 뉴런들이 보낸 전기신호는 해당 사구체(H)로 모아져 사고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안와전두피질, 감정반응과 연관된 편도, 자율신경계 최고의 중추인 시상하부,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해마 등 뇌의 여러 부분에 동시에 전달된다.

냄새를 맡는 행위 하나에 이처럼 복잡한 인식 메커니즘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나므로 파인애플 냄새를 맡으면 즉시 군침이 흐르고, 방귀 냄새에는 인상이 찌푸려진다.


요리사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해 과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맛과 멋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대의 요리사들이 점점 과학자로 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