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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경원대신문 2008. 04. 07 일자 "암흑속에서 찾은 눈의 소중함"
블라인드 | 등록일 : 2008-04-11 04:49:03 | 조회 : 9478
암흑속에 찾은 눈의 소중함


서가영 기자 sky_0217@naver.com



늘 누리고 있기 때문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눈부심을 느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 주는 눈에 대한 소중함을 이색체험과 함께 느끼고 싶다면 건대입구역 근처의 왕의남자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이곳은 스위스 취리히와 중국 베이징 등지에 있는 시각장애 체험 레스토랑을 모델로 한 암흑 레스토랑이다. 스위스의 앞을 못 보는 유르크 슈필만 목사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상시적인 체험공간을 제공하고자 시각장애 체험 레스토랑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왕의남자 레스토랑 유승훈 매니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식당을 통해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눈의 소중함에 대한 교훈을 얻어간다”며 “암흑에서의 식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상상하고 구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왕의남자 레스토랑은 거짓말처럼 새까맣다. 조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시각을 제외한 미각, 촉각, 후각, 청각만을 이용할 수 있다.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은 유일하게 조명이 밝혀진 현관에서 손전등이나, 휴대전화, 야광시계, 카메라 등 빛이 발생하는 모든 물건을 카운터에 맡겨야 한다.

‘시각이 필요치 않은 세계’를 체험할 마음의 준비까지 끝났다면, 현관 한 켠에 있는 두꺼운 커튼 문을 통해 홀로 안내된다. 약간의 빛도 투과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커튼을 지나는 순간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다.

이곳에서부터는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적외선 안경을 쓴 종업원의 어깨를 잡고 테이블까지 이동한다. 손님은 테이블 위를 손으로 더듬어 포크와 스푼 등을 찾아 식사를 시작한다. 눈을 뜬 상태와 눈을 감은 상태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각이 전혀 필요치 않다.

종업원은 스프, 샐러드, 볶음밥, 스테이크 등의 음식을 차례로 손님의 앞에 놓는다. 음식을 앞에 둔 앞 못 보는 손님은 그릇을 만져 모양과 온도를 느낀다. 코를 이용해 냄새를 맡고, 음식을 입에 넣어 직접 맛을 느낄 때까지 그 음식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조차 없다.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 언제나 마음껏 눈으로 볼 수 있었기에 못 느꼈던 눈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이 맛있는 스프라는 것을 알아도 마음껏 떠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을 그릇까지 바짝 가져간 후에 먹거나, 스푼을 쥔 손 아래 다른 쪽 손을 바쳐 입으로 가져간다. 이러한 과정 중에 식기를 떨어뜨리거나 옷에 음식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근처에 있는 종업원을 소리쳐 부르거나, 테이블 옆에 있는 호출기를 사용할 수 있다.

레스토랑측은 보이지 않는 만큼 안전상의 문제에도 민감하게 대처한다. 유 매니저는 “암흑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만큼 사람들의 조심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인지 레스토랑 개업 후 안전사고가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앞으로도 손님이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안전대책과 소방설비를 철저히 점검해 시각장애라는 귀한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고 밝혔다.

암흑 속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 중에서는 간혹 혼란을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동안의 의도적인 시력상실이기에 이 특별한 체험을 즐긴다. 목소리를 낮추고 새카만 어둠과 어둠 속에 함께 있는 일행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만큼 옆 사람의 인기척을 소리와 촉각 등으로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색다른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9일 왕의남자 레스토랑에서 이 독특한 식사체험을 한 김태영(22세)씨는 “처음 이 곳에 들어올 때는 암흑이 낯설고 불안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암흑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들게 됐다”며 “그러나 오늘의 경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너무나 불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식사가 끝난 후 커튼을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암흑 속에서의 시간이 꼭 꿈을 꿨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시각의 사용에 익숙하던 손님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레스토랑 측의 이벤트도 이어진다. 유 매니저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빛이 없는 레스토랑 안에 울린다. 손님이 미리 신청해 둔 메시지를 전달해 주거나, 어둠 속에서 큰 힘이 돼주는 옆 사람에게 안마를 권유한다. 또 펜과 종이를 제공해 어둠속에서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시각장애 체험을 무사히 마친 이영미(26세)씨는 “특별하고 이색적인 경험이었다”며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했던 암흑에 대한 경험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국형구(26세)씨는 “암흑 속에서 더듬더듬 음식을 먹으며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평생을 답답함 속에 사셔야 하는 시각장애인분들이 생각나 너무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Happiness is itself a kind of gratitude’(행복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라는 외국의 속담이 있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햇살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볼 수 있는 기쁨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일상의 반복을 겪고 있다면 맛있는 시각장애체험을 통해 행복을 찾아보자. 건강한 시력을 누리는 오늘의 특권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i-kwup.com/news/read.php?idxno=1369&rsec=MAIN§ion=MAIN